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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와 자유 그 어딘가에 있는 행복 - 기억전달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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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와 자유 그 어딘가에 있는 행복 - 기억전달자

고고V 2021. 8. 13. 11:28

하루를 마무리 하며 둘러앉아서 그날 있었던 일과 각자의 감정을 공유하는 훈훈한 저녁식사를 보며 '어머나 너무 이상적인 가정이다! 멋지다 정말! 저렇게 8살, 12살 자녀들과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다니!' 라고 감동을 받았다. 

맞다, 정말 이상적인 가족이다. 소설속 세계는 이상의 세계이고, '좋은 것'들만 모아둔 표준의 세계이다. 

잠들기 전엔 그날의 이야기를,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의 꿈을 같이 공유 한다.

그러나, 아름답게만 보이던 이 행위가 강제적으로 이루어 지고, 의무적으로 모든 감정을 이야기 해야 하며 각자를 존중하고 공감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위한 수단이라는 걸 알게되자, 폭력적이고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기억 전달자

《기억 전달자》는 로이스 로리가 쓴 SF 4부작 소설중 첫 번째 이야기이다.

www.google.com

 

소설 '기억전달자' 속 세상은 완벽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개인별 차이, 성격과 취향 모든걸 무시하고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동일하게 짜여진 시간표 내에서 모든 구성원이 움직이는 '유토피아'다. 질병과 장애도 없고, 이상기후나 전쟁, 굶주림도 없는 지극히 효율적이고 안전한 사회! 

이 유토피아에서 누구보다 모범적인 소년 '조나스'는 마을에 단 한명 존재하는 '기억보유자'로 선정된다. 

소설은 친절한 설명으로 이 '유토피아'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가정은 어떻게 구성되어지고 직업은 어떻게 선정되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조나스가 기억을 받으며 나타나는 시각의 변화, 사고의 변화, 행동의 변화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를 꼭 봐야한다. 영화는 그 유토피아가 어떻게 가동되는지, 무채색의 안전하고 통제된 세상을 보여주고, 조나스가 기억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좀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소설을 더 완벽하게 이해할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c2D3-420)

조나스는 기억을 통해 진정한 '기쁨'을 이해하고 되고, '선택'에 대해 알게 된다. 

굉장히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죠. 상상조차 못하겠어요. 사람들이 잘못선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보호해야 해요. (p168)

초반엔 조나스도 선택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를 걱정하고, 통제에 동의한다. 

우리가 규칙을 바꾸자고 할 순 없나요? (p194) 

하지만, 기억을 받으면서 조나스는 변화한다. 

사랑과 긍지,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되고,  결정적으로 '임무해제=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유토피아'는 억압과 통제 위에 쌓여진 '디스토피아'이며, 그 곳에서의 삶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걸 깨닫게 된다. 

새벽이 오면 늘 그래 왔듯이 질서 정연하고 조직적인 삶이 계속될 것이다. 아무것도 예상 밖의 일을 격거나 불편한 일을 맞거나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삶이. 색깔도, 고통도, 과거도 없는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p280)

조나스가 왜 떠나야 하는지, 통제된 유토피아가 얼마나 끔찍한 삶과 같은지 이 부분을 통해 알수 있었다. 조그마한 케이지에 갇혀 사료를 먹고,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가 떠오른다. 고통없는 햄스터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케이지를 탈출한 조나스는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추위와 굶주림, 쇠약해진 건강과 불확실한 상황이 주는 공포 등 케이지 안에서는 느낄수도 상상할수도 없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했고 자유와 사랑이 존재하는 삶을 위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결국 상상만 하던 색깔이 있고 노래가 있고 사랑이 있는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영화를 봐야 한다. 소설만으로는 조나스의 탈출과 새로운 세계로의 이동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조나스는 자신의 자유와 행복만을 위해 떠난게 아니라 감시와 통제에 같혀있는 디스토피아를 해체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했고, 결국 해냈다.- 이건 영화를 보면서 알게됐다. )

위기와 재난을 막기위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때때로 감시와 통제는 정당화 된다. 

조지오웰은 <1984>를 통해 빅브라더의 출현을 경고했고, 스노든은 빅브라더의 광범위한 감시가 이미 이루어 지고 있음을 폭로한바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화와 안전의 이름으로 적정수준 이상의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 진다면, 나는 저항하고 거절할수 있을까? 

완벽한 세상은 존재 하지 않는다. 고통과 슬픔, 외로움과 상실은 행복과 환희, 성취와 만족의 다른 이름이고 개개인은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하고 스스로의 미래를 창조하고 책임을 진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쉽고 가벼운 소설인줄 알고 시작했다가 내 삶과 사회전반의 시스템,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고민하게한 무겁디 무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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