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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계단을 함께 오르며

고고V 2019. 6. 11. 16:24
첫장부터 툭 하고 마음 한구석에 뭔가 떨어진다. 

세네카가 말했다.(책과 책을 통해 확장되는 세계관이 느껴진다. 불과 한달전만해도 나는 세네카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세네카가 네로황제의 스승이자 네로에 의해 자살당한 철학자라는걸 안다. 트레바리로 생각의 폭이 마인드 맵을 그리듯이 가지를 뻗어 나간다)

다시, 세네카가 말했다. 같은자리를 표류했다고 해서 그가 긴항해를 했다고 할 수없다. 그저 오랜시간을 수면위에 떠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저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으며, 내가 3년째 같은자리에 근무한다고 해서 내가 업무에 통달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감내하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첫번째 계단> 소설

죄와벌 -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제거하고 "소수의 무가치한 것을 희생함으로써 절대적인 다수의 선을 실현할 수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당연히 로쟈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다 이런 치환된 질문에 살짝 놀랐다.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무가치한것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게 있지 않았던가? 

p 52 저자는 로쟈에게 매료되었던 19살의 자신과, 소냐를 더 지향하게된 어른의 자신을 비교하며, 19살의 자신의 생각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중략)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이 끝날 무렵에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중략)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한번에 도약하는 사람은 없다."

<두번째 계단> 기독교

두번째 계단은 성서이다.

근데, 복음의 핵심을 뚫은듯 하다가, 걍 끝난다. 

p87 때로는 멀리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뭘 돌아가야한다는 건지? 곧바로 얻거나 해결할 수없다는걸 깨달았다는건가? 그게 왜 계단을오른건가?????? 

- 이건 내 신앙과 결부되어 있어서 공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번째 계단> 불교

"p99 밤하늘에는 실제로 별들의 강이 있었다. 그것은 놀랍도럭 선명하고 짙은 우윳빛 이었고 한쪽하늘에서 시작해서 내 머리위를 거쳐 빈대편 하늘까지 거대하게 이어져 있었다.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였다"

스물한살, 이상주의자로, 나름의 신념대로 꿈꾸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수더분한 대학생이 떠오른다. 

현실은 잠시 접어두고 이상을 쫓아 가던 그시절의 감정이 되살아 난다. 

그런생각이 든다. 21살 그땐 그당시에만 할수 있는게 있다는걸 몰랐다. 뭘해도 되는 시기이고, 이해받을수 있는 시기였다는걸 몰랐다. 

그런데 동시에 30대의 지금만 할수 있는일이 있는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지금만 할수 있는걸 놓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된다. 

  Q . 10년, 20년이 흘렀을때 '2019년의 나만이 할수 있었는 일이었다' 싶은게 뭐가 있을까? 

 <네번째 계단> 철학

네번째 계단에서 니체를 만났다.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허무주의의 최고의 형태를 니체가 만들었다. 이런 극단적인 허무를 인정하고 나의 삶을 끌어 안으라고 한다. 

인간의 삶의 형태는 보편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단순화 하기에 너무도 구체적이다. 그러므로 삶의 다양성과 해석의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p135, 살짝 고침)

니체가 왜 신은 죽었다고 했으며, 극단적 허무주의자로 불렸는지 조금 알것같다. 니체가 상정한 세계는 "영혼회귀"의 세계로 영원히 내 삶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세계이다. 이 부분에서 또 숨이 탁 막혔다. (채사장이 사람 숨막히게 글을 쓰는듯...;;)

'p156 너의삶은 어떤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고 이 고통의 순간은 영원히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중략)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당신의 삶 전체를앞에두고 "이것이 인생이라면 그래, 다시한번"이라고 긍정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p157 하늘이 아니라 대지를 걸어가야겠다. 걸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과의 영원한 순간을 긍정할 수 있는 그런삶을 살아가야겠다' 고 다짐한다. 

두 페이지간 간극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채사장은 스스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한계단 한계단 오라가는데, 나는 계속 뒤통수만 맞고 작가와의 간극만 넓어진다.  

 Q . 영혼회귀라는 허무한 상황에서 내삶에서 만나는 순간을 긍정할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섯번째 계단> 이상 

p209 

'어느날인가 군 생황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앗겠습니까? 사람들도 힘들게 하고 되는일도 없고, 왜 힘든지 생각했더랬지 말입니다. 생각하다 보니까 보람도 성취도 없기 떄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보람도 성취도 없나. 그랬더니 제가 모든걸 대충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략) 그렇게 저는 군 생활 전체를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2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찮은 시간으로 채울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지 말입니다. 나한테 선물해야겠다. 군 생활의 2년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 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뭐, 구두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p214 그는 그 모든 이유와 무관하게 옳다. 그는 자기 삶의 입법자 이고, 자기 삶의 대지를 걸어가는 자가 아닌가. 

근데, 체게바라는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일곱번째 계단> 현실 - 공산당 선언

p244 

낯선 시스템에 던져진 초기에는 누구나 그 시스템의 단점과 문제점을 쉽게 발견한다. 열정적인 그는 저항하고 좌절하면서 내적인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곧 시스템이 생각보다 효율적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 무서운 적응의 힘. 그리고 이런것 때무에 간부제도가 필요하다. 젊은 중간관리자의 힘이다. 나를 돌아본다. 직장생활 5년차. 나는 어디에 있는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젊은 간부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효율성을 이해해버린 적응형 인간인가?

p249, 250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수 있다는 선입견.(중략)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떄에만 얻게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여덟번째 계단을 지날때즈음 점차 채사장을 이해하게되고, 그가 어떤상황에 처했으며 그 상황에서 새로운계단을 밟아 올라갔는지를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외골수 같던 채사장이 점점 작가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홉번째 계단> 죽음 - 티벳 사자의 서

P338  

우리가 사후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존재들과 빛은 사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략) 죽음이후의 세계는단지 내 마음의 환영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동일하니, 삶의 세계도 사실은 내 마음의 환영일 뿐이다. 

P358 

나 '<티벳 사자의 서>는 확신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세계란 나의 내면 세계라는 것을요. 더 놀라운 건, 죽음 이후의 세계 역시 나의 내면세계 라는 것이죠'

파드마 삼바바'그렇다면 네가 느끼는 그 허망함도 외부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의 산물임을 이해하겠구나. 허망해하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해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만들지 마라.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를 심판하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종교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란 무엇일까. 수백년 전부터 인류는 지혜와 깨달음을 쫓았고 기원전 몇세기에 쓰여진 책이 오늘의 나(아니 채사장)에게도 가르침을 준다. 이런것이 지혜인가. 결국 중심은 내부에 있다. 

<열번째 계단> 나 - 우파니샤드

p378 자신이 바로 아트만(영원하고 절대적인존재로서 본질적인 자아, 개인의 본질)이고 브라흐만(우주최고의 원리, 일체만물을 창조한 우주최고의 신)임을 깨닫게 될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나는 세상에 던져진 그저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우주의 근원과 이어진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p387 

칼 융은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닫힌 책으로 시작해서 닫힌 책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열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중략) 아무리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꼼꼼하게 읽어간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숨겨진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텍스트에 대한 선이해 입니다. 이것은 아니러니하고 또한 비극적 입니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그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책을 읽음으로써 A라는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A에 대해 체험했어햐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텍스트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 지식에 대해 앞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어화줄 뿐입니다. 나의 체험을 벗어난 것들은 나에게 체험되지 않습니다. 

Q. 아홉번째와 열번째 계단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듯 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열반과 해탈은 무엇인가? 

점차 책과의 거리가 가까워 진다. 그러다가 열번째 계단을 오를때 쯤엔 채사장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철학은 어렵다. 궁금증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채사장의 다른책을 검색해본다.